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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영월/제천 명소 가톨릭 성지 순례 - 배론성지

by 기타마을이장 2022. 6. 8.

2년여간의 캠핑 생활을 통해 우리 가족들이 주로 이용하는 캠핑장이 거의 고정되어 간다.

그렇다 보니 매번 가는 곳을 또 가게 되니 계속 캠핑장에서만 머무는 것도 좋지만 주변 볼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5월 초 어린이날 연휴를 활용해서 영월캠프에서 보낸 캠핑기간에

주변에 볼거리를 찾다보니 가톨릭 신자로서 참 의미 있는 성지가 근처(?)인 것을 발견하고 성지순례를 계획했다.

 

성지순례이다 보니 조금은 딱딱할 수 있어 아이들을 위한 작은 프로그램을 준비해 갔는데 나름 효과는 좋았다.

하지만 역시 1시간 이상 아이들이 성지순례를 하기에는 아직 조금 어린것 같다ㅎㅎ

특히 다음부터는 성지순례를 하게 되더라도 산길을 오르내리는건 되도록 빼야 할 것 같다ㅠ

작지만 그래도 준비해간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해 준 아이들에게 참 고맙다ㅎㅎㅎ

 

배론성지

한국 가톨릭은 선교사에 의해 전파되지 않고, 스스로 학문을 연구하면서 신앙으로 발전한 전세계에서 유일한 사례이다.

오히려 해외 선교사들이 나중에 그런 조선 가톨릭을 도와주러 들어왔다가 박해가 시작되면서 순교했다.

그리고 여러차례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모이기 시작했고 그중 한 장소가 바로 배론이다.

배론성지는 지형이 배 밑바닥을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지명이라고 한다.

슬픈 역사로 인해 만들어진 성지이지만 지금은 평온하고 예쁜 가톨릭의 중요 성지인 것 같다ㅎ

진입로를 따라 기념성당쪽으로 걷다보면 왼편 잔디밭에 성모자상이 보인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 조각공원
성모 동굴
마음을 비우는 연못

 

한국 최초의 신학교 성요셉 신학교

배론성지 안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신부님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신학교가 위치한 곳이다.

프랑스 파리외방선교회 신부님들이 들어오셔서 신학교를 설립하고 교육을 시작했고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함께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최방제 프란치스코 신학생 이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덕분에(?) 수사학, 철학, 신학, 라틴어 등을 교육하는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근데 교우촌 회장님의 집을 신학교로 봉헌한 거라서 그런지 학교라기보단 초가집의 모습이다ㅎㅎ

 

한국 두번째 신부님 '땀의 순교자'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야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으로 워낙 유명하다.(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도 나오는ㅎㅎ )

그런데 사실 김대건 신부님은 너무 짧은 사목활동을 하시고 순교하셨다 보니,

이후 한국 천주교회를 이끈 사람은 최양업 신부님이라고 생각된다.

무려 11년 넘게 전국을 누비면서 사목활동을 하시고, 결국 과로로 돌아가셨던ㅠ

 

‘가경자’란 교황청 시성성의 시복 심사에서 영웅적 성덕이 인정된 ‘하느님의 종’에게 붙이는 존칭이라고 한다.

(가톨릭신문 참조)

 

교황청, 최양업 신부 ‘가경자’ 선포

한국교회가 배출한 두 번째 사제이자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최양업 신부가 ‘가경자’(可敬者, Venerable)로 선포됐다. 이로써 최양업 신부는 한국교회가 추...

www.catholictimes.org

 

아이들에게는 조금 힘들었던 십자가의 길을 따라 산길을 가다 보면 최양업 신부님의 묘소가 나온다.

최양업 신부님 묘소에 도착해보니 그 언젠가 와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왔다ㅎㅎ

최양업 토마스 신무님 묘소로 올라가기 전 야외제대
십자가의 길을 따라 산길을 걷다보면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묘소가 나온다.
최양업 신부님 묘소

 

황사영 백서

예전 국사시간에 조선 말기 천주교 박해관련 내용이 나오면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황사영'이다.

황사영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 8개월 동안 토굴 속에 머물며 중국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편지를 썼던 그 장소가 배론에 있다.

실제로 들어가 보면 요즘 시대의 평균 성인 남성 이상이라면 절대 허리를 필 수 없는 곳이다ㅠ(여기서 8개월이라니;;;;)

가톨릭 신자들의 입장에서는 죽음의 공포에서 도움이 필요했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백서를 작성했던 것이지만,

그 외의 사람들, 특히 천주교를 박해하는 입장에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역적이 바로 황사영이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백서가 발각돼서 또 다른 박해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고ㅠ

그래서 그런지 황사영은 거열형에 처해졌다고 한다.(거열형... 정말 무시무시한 사형 방식인 거 같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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